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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왜 중세 유럽은 마녀사냥에 빠졌을까?

왜 중세 유럽은 마녀사냥에 빠졌을까?

조용했던 마을에, 갑자기 “저 여자가 마녀래!” 하는 외침이 울려 퍼집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수군거리기 시작해요. “그 여자가 이상하긴 했지…”
그리고 누군가는 고발하고, 누군가는 불에 장작을 올리죠.
이것은 허구가 아니라, 중세 유럽 전역에서 실제로 벌어졌던 일이에요.

그런데, 도대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왜 유럽 사람들은 마녀를 그렇게 무섭게 여겼고, 또 무자비하게 처벌했을까요?
단순히 미신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이건 훨씬 복잡하고, 사회적인 문제였습니다.

 

 

왜 중세 유럽은 마녀사냥에 빠졌을까?

 


 

🔥 유럽은 언제부터 마녀사냥을 시작했을까?

 

마녀사냥은 중세 초기부터 시작된 건 아니에요.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오히려 “마법은 허무맹랑한 미신”이라며 무시하는 분위기였거든요.

하지만 15세기 후반부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대표적인 계기는 1487년, 독일에서 출간된 책 《말레우스 말레피카룸》(Malleus Maleficarum).
이 책의 제목은 '마녀를 때려잡는 망치'라는 뜻인데, 여기엔 “마녀는 실제로 존재하며, 사탄과 계약한 존재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어요.
이 책은 당시 유럽에서 베스트셀러처럼 퍼졌고, 마녀사냥의 매뉴얼처럼 쓰이기 시작했어요.

즉, 마녀사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미친 짓이 아니라,
시대의 불안과 종교, 권력의 이익이 맞물려서 생긴 ‘사회적 현상’이었던 거죠.


 

⛪ 종교 개혁과 가톨릭 vs 개신교의 대결

 

16세기, 유럽은 격변의 시기를 겪습니다. 바로 종교개혁.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 장사 하지 마!”라고 외치며 개신교가 생기고,
가톨릭은 위기를 느끼고 반격에 나섰죠.

이때부터 유럽 전역이 신과 악마, 진짜 신앙과 이단, 정통과 비정통의 싸움으로 물들어요.
그리고 그 ‘악마의 하수인’ 역할을 떠맡은 게 바로 마녀였어요.

개신교든 가톨릭이든 자신들의 세력이 흔들릴 때마다,
“이건 마녀들의 저주야!”, “악마가 우리를 방해하고 있어!” 라고 외쳤습니다.
그렇게 양쪽 모두 마녀를 찾아내어 제거하려고 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됐죠.

 


🧹 왜 하필 ‘여성’이 마녀가 되었을까?

마녀로 지목된 사람들 중 80% 이상이 여성이었습니다.
특히 미혼 여성, 나이든 여성, 과부,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이 많았어요.

이유는 여러 가지예요:

  • 기독교 교리는 이브가 ‘죄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강화했어요.
    그래서 여성은 유혹에 약하고,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이미지가 있었죠.
  • 중세 사회의 여성 혐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기주장을 하거나 독립적인 여성은 눈엣가시였어요.
  • 약초나 민간요법을 잘 아는 여성들은 마치 “이상한 힘”을 가진 것처럼 오해받았고,
    병을 고쳐도 “악마의 힘을 썼다”, 병이 악화되면 “저주를 걸었다”는 식으로 몰렸어요.
  • 농사가 망했을 때, 아이가 아팠을 때, 젖이 안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모든 불행의 원인을 ‘마녀’에게 떠넘긴 거예요.
    하지만 이는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불안한 사회에서 스스로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이상한 사람’을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일종의 사회적 방어기제였어요.

요즘으로 치면, 모든 문제를 ‘이상한 사람’에게 떠넘기려는, 일종의 ‘희생양 찾기’였던 셈이죠.


 

📚 마녀사냥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마녀라고 지목된 사람은 재판을 받았지만, 현대적인 재판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사실상 고문강제 자백, 조작된 증언이 결합된 시스템이었어요 .

예를 들어:

  • 고문 도중에 자백을 하면, “봐라, 마녀가 맞다!”
  • 고문 도중 기절하거나 사망하면, “악마가 자백 못하게 한 거다!”
  • 도망치면, “그래서 마녀가 맞다!”
  • 무고하다고 주장하면, “거짓말하는 것도 마녀의 특징이다!”

이런 식으로, 마녀라는 프레임에 빠지면 벗어날 방법이 없었어요.
그저 누군가의 질투, 불만, 오해, 혹은 정치적인 이익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늘어났던 거죠.

 


 

⚖️ 마녀사냥의 절정과 끝

 

17세기 중반, 마녀사냥은 절정에 이릅니다.
독일, 스위스,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등 유럽 전역에서
10만 명 이상이 마녀로 고발되었고,
그 중 4~6만 명 정도가 실제로 처형당했다는 추정이 있어요.

특히 유명한 사건 중 하나가 1692년 미국 식민지 매사추세츠의 세일럼 마녀재판.
이건 유럽 본토에서 퍼진 사상이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해져 생긴 일이죠.

 

18세기에 들어서면서 계몽주의 사상이 퍼지고 과학적 사고가 자리잡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점차 비이성적인 믿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마녀사냥이 완전히 사라진 건 단순히 ‘이성이 깨어났기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법적 절차가 개선되고, 고문이 금지되거나 증거 중심 재판이 도입되면서,
더 이상 억지 자백에 의존한 처벌이 힘을 잃었죠.
또한 절대왕정 체제로 넘어가면서 종교재판보다는 국가 권력이 우위를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 관심 역시 다른 문제로 이동하게 되면서 마녀사냥은 점차 종식되었어요.


 

🧠 결국, 마녀사냥은 무엇이었을까?

 

마녀사냥은 단순히 “미신을 믿던 시절의 바보짓”이 아니에요.
그건 당시 사회 불안, 종교 대립, 여성 차별, 정치 권력의 조작,
그리고 인간의 집단심리가 얽힌 무서운 현상이었어요.

당대 사람들은 정말로 마녀가 존재한다고 믿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믿음은, 누군가를 희생시킴으로써
불안을 덜고 질서를 유지하려는 잔인한 선택이었죠.

그리고 우리가 그걸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몰아세우고,
‘이상하다’는 이유로 배척하며,
‘내가 옳다’는 이유로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여전히 벌어지고 있으니까요.


🔍 참고로, 마녀사냥의 종말은 ‘지식’과 ‘이성’이 가져왔습니다.
계몽주의 시대에 과학과 합리성이 퍼지면서,
더 이상 마녀 이야기는 힘을 잃었어요.
결국 진짜 ‘악마’는, 사람의 무지와 공포였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