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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천연두: 인류가 없앤 최초의 전염병, 역사와 그 영향

 

 

조선 시대, 아이의 얼굴에 작은 붉은 점이 올라오면 어른들은 조심스럽게 속삭였대요.

“마마가 오셨다.” 그 말 속에는 두려움과 기도가 함께 들어 있었죠.

천연두는 개인의 병을 넘어, 가족과 마을, 나라의 질서를 뒤흔든 재앙이었어요.

왕도, 농부도, 아이도 예외가 없었고, 생존하더라도 얼굴에 깊은 흉터가 남기 일쑤였죠.

이 병은 한 지역의 비극이 아니라 인류사의 방향까지 바꿔놓았어요.

 


 

🧬 천연두의 발생과 역사

 

 

천연두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한 전염병이에요.
고대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5세의 미라에서도 천연두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죠.

다만 고대 유행의 규모나 범위는 지금도 논쟁이 있지만, 수천 년간 인류를 괴롭혀온 질병이라는 점만은 분명합니다.

 

어떤 병이었을까?

천연두(소두, 두창)는 바리올라(variola) 바이러스가 원인인 급성 전염병이에요.

고열과 극심한 통증 뒤, 얼굴과 손에서 시작된 수포성 발진이 온몸으로 번지죠.

예방접종 이전 시대에는 치명률이 약 30%에 달했고, 살아남더라도 흉터나 시력 손실 같은 후유증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눈에 띄는 발진 단계에서 전염력이 크게 높아진다는 특징이에요.

이 때문에 나중에 WHO가 시행한 ‘환자 발견 → 접촉자 고리 접종’ 전략이 실제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답니다.

 

 

 


 

 

🌍 세계사를 흔든 영향

 

1) 중세 유럽을 뒤흔든 천연두의 그림자

중세 유럽에서 천연두는 신분을 가리지 않는 병이었어요.

귀족과 왕족도 예외가 아니었고, 왕위 계승과 정치 지형에까지 파문을 일으켰죠.

반복되는 유행은 인구 구조를 약화시키고, 노동력 부족과 경제 변동을 낳았습니다.

사람들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 앞에서 기도와 격리, 미신적인 의례를 오가며 버텼어요.

 

2) 신대륙 문명 붕괴의 보이지 않는 무기, 천연두

1492년 이후, 구대륙의 질병이 아메리카로 건너가면서 원주민 사회는 극심한 충격을 받았어요.

총칼보다 무서웠던 건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였죠.

1520년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의 참상은 여러 기록에 남아 있고, 1779년부터 1783년까지의 대유행은 북미 서부·캐나다 프레리까지 휩쓸었습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차이는 크지만, 일부 지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줄었고, 최대 80~90% 수준을 추정하는 연구·서술도 있어요.

학계에서는 감염병 외에 전쟁·강제노동·기근·사회 붕괴가 겹쳤다는 점도 함께 논의됩니다.

요지는 분명해요. 질병은 정복의 숨은 동맹이었고, 신대륙의 역사를 근본부터 바꾸어 놓았다는 것.

 

3) 조선 사회를 공포에 몰아넣은 ‘마마’

조선 사회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조선왕조실록에는 900건이 넘는 역병 기록이 남아 있고, 그 중에서도 두창(마마)은 국가가 특별히 경계했던 질환이었죠.

조선은 천연두를 두려워했던 만큼, 환자가 있는 집안은 부역과 세금을 면제해 주고 격리하도록 했고, 증상을 완화하려는 치료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또 『창진집』 같은 전문 의서를 편찬해 의료 체계를 마련했으며, 근대에 들어서는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 예방을 향한 모색: 인두법에서 백신으로

 

1) 위험을 감수한 인두법(variolation)

근대 이전 사람들은 인두법을 썼어요.

천연두 환자의 딱지나 고름을 소량 접종해 가볍게 앓고 면역을 얻는 방식이었죠.

효과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사망 위험(대략 1~2% 수준으로 보고)이 뒤따랐고, 접종자에서 진짜 유행이 번질 위험도 있었어요.

이 방법은 중국·인도에서 시작되어 오스만 제국을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고, 레이디 메리 워틀리 몬태규가 1721년 영국에 소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2) 1796년, 제너의 ‘우두법’이 문을 열다

전환점은 1796년이었어요.

영국 농촌의 의사 에드워드 제너소의 천연두(우두, cowpox)를 앓은 사람들은 사람의 천연두에 잘 걸리지 않는다는 관찰을 실험으로 증명했죠.

소년 제임스 핍스에게 우두를 접종한 뒤, 천연두에 노출해도 앓지 않았어요.

여기서 세계 최초의 ‘백신’이 탄생합니다.

백신(vaccine)이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 ‘vacca(소)’에서 왔습니다.

이 발견은 1798년 출판을 통해 확산되며 근대 면역학의 출발점이 되었죠.

 

3) 조선의 백신 도입과 지석영

19세기 말 조선에도 우두법이 본격 도입돼요.

의사 지석영(1855~1935)은 일본에서 우두 제조법을 배우고 돌아와 종두장을 설치, 백신을 보급합니다.

대한제국·일제강점기에는 공중보건 정책으로 접종이 확대되며, 전통적 인두법은 점차 퇴장했어요.

“조선의 제너”라는 별칭은 그래서 붙었습니다.

 

 

 

천연두: 인류가 없앤 최초의 전염병, 역사와 그 영향

 

 


 

🗺️ 천연두 박멸의 역사: WHO의 전략

 

1) ‘고리 접종’으로 전파 고리를 끊다

20세기 중반까지도 천연두는 여전히 전 세계 곳곳에서 목숨을 앗아갔어요.

그러다 1967년, WHO가 강화된 박멸 프로그램을 시작합니다.

핵심은 간단했죠.

환자를 빨리 찾아 격리하고, 그 주변 접촉자에게 집중적으로 백신을 둘러쳐(고리 접종) 전파 고리를 끊는 것.

증상이 드러난 뒤 전염력이 커지는 천연두의 특성과 탁월하게 맞아떨어진 전략이었어요.

 

2) 마지막 자연 감염과 공식 선언

작전은 성공했어요.

1977년 소말리아의 알리 마우 말린세계 마지막 자연 발생 환자로 기록되었고, 1980년 WHO 총회가 천연두 박멸을 공식 선언했죠.

인류가 완전히 없앴다고 공인된 유일한 전염병, 그게 바로 천연두예요.

(참고로 1978년 영국 버밍엄에서는 실험실 노출 사고로 인한 사망 사례가 있었는데, 이는 자연 발생과는 구분됩니다.)

 

 


 

🌱 천연두 박멸의 교훈과 현대 의학의 변화

 

1) 정복과 질서의 재편

신대륙의 인구 급감과 사회 붕괴는 세계 질서의 대전환을 이끌었어요.

유럽의 팽창은 총칼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었죠.

감염병이 보이지 않는 길을 열어 준 셈이에요. (인구 감소 폭·원인 비중에 대해선 다양한 학술적 추정과 논쟁이 있음을 함께 기억하면 좋아요.)

 

2) 의학의 혁신과 ‘백신’의 시대

천연두는 인두법의 위험을 넘어 백신의 시대를 열어 주었고, “백신”이라는 말 자체도 소(vacca)에서 나왔어요.

이후 홍역·소아마비 등 다양한 백신이 개발되며 인류의 기대수명과 생활은 크게 달라졌죠.

 

3) 공중보건의 교훈

감시·신고, 접촉자 추적, 보상·격려, 지역사회 참여, 이 모든 것이 맞물려야 박멸이 가능했어요.

그래서 천연두는 오늘날의 팬데믹 대응 설계도가 되었죠.

증상 기반 전파라는 질병의 특성현장의 신속한 접종 전략이 만났을 때 어떤 결과가 가능한지, 인류는 실제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 에필로그|끝났지만 끝나지 않은 이야기

 

천연두의 이야기는 단지 과거의 질병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감염병 대응, 백신 개발, 공중보건 전략 모두 그 뿌리를 이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죠.

“사라진 병”이 남긴 가장 큰 선물은, 다음 위기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는 나침반일지도 모릅니다.

 

 


 

📌 참고 자료

  • 세계보건기구(WHO) – 천연두 박멸 관련 보고
  •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 천연두 정보 및 역사
  • 조선왕조실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시대 두창(마마) 기록
  • Encyclopaedia Britannica – 천연두 역사와 제너의 백신
  • 의학사 관련 논문 및 자료집 – 인두법과 우두법, 백신의 발전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