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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국에 언제 빵이 들어왔을까?

한국에 언제 빵이 들어왔을까?

"우리가 매일 먹는 빵, 사실 역사는 150년도 안 된다"

 


 

📜 떡과 전병의 나라, 빵은 없었다

 

조선 시대 사람들에게 ‘빵’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밀가루를 반죽해 구운 음식은 있었지만,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부드럽고 달콤한 서양식 빵과는 거리가 멀었죠.
대표적인 예가 전병(煎餠), 화전(花煎), 그리고 밀가루를 찌거나 지져 만든 떡이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에게 밀은 귀한 곡물이라 주식보다는 제사나 잔치 때만 썼어요.
게다가 설탕은 아주 비싸서 달콤한 빵은 상상조차 어려웠죠.

 


 

⚓ 개항과 함께 찾아온 낯선 맛

 

본격적으로 ‘빵’이 한국에 들어온 시기는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개항기였습니다.

(개항기 : 나라가 외국에 항구(港口)를 열고(開港), 외국과 교역을 시작한 시기.)
인천, 부산, 원산 같은 항구 도시에 외국인 거주지가 생기면서, 서양인과 일본인들이 먹는 빵이 자연스럽게 유입됐어요.
당시 조선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교회와 학교를 세우면서 자신들이 먹던 빵을 직접 구워 먹었고, 이 과정에서 조선인 보조 인력이 제빵법을 배웠습니다.

 

특히 인천은 외국인 조계지가 있던 곳이라, 외국 문물이 빨리 들어와 제과점도 비교적 일찍 생겼습니다.

(조계지 :  외국인에게 일정 구역을 빌려주고(租), 그곳에서 자치권을 행사하게 하는 지역(界))
1890년대 신문 기사에는 ‘서양식 빵’이 호기심 많은 조선 사람들에게 판매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 최초의 제과점과 일본식 빵

 

개항기 이후 빵 문화 확산에는 일본을 통한 전파가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였고, 식민지 조선에도 제과·제빵 문화를 들여왔어요.
1900년대 초, 경성(서울)에는 일본인들이 운영하는 제과점이 등장했습니다.
단팥빵, 멜론빵 같은 일본식 빵뿐 아니라, 식빵과 버터롤 같은 서양식 빵도 팔았습니다.

 

1910년대 신문 광고를 보면, 경성 중심가에 ‘서양과자·빵 전문점’이 여럿 있었고, 일부는 일본에서 직수입한 제빵기계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빵은 고급 음식이었고, 대다수 조선 사람들에게는 구경조차 힘든 음식이었어요.

 

한국에 언제 빵이 들어왔을까?

 


 

🎓 학교와 병원에서 퍼진 빵

 

1920~30년대 들어 빵은 점점 대중에게 노출되기 시작했어요.
대표적인 경로가 선교 학교와 병원이었습니다.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급식이나 간식으로 서양식 빵을 제공했고, 병원에서도 환자식으로 부드러운 빵과 수프를 내놓았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남긴 회고록에는 “처음 먹어본 하얀 식빵은 신기하고 부드러웠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는데요.
이 시기, 제빵 기술을 배운 조선 사람들이 하나둘 개인 제과점을 열기도 했습니다.

 


 

🇰🇷 광복과 ‘삼립빵’의 시대

광복 이후 미군정기(1945~1948년)에는 빵이 대중화될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미군을 통해 대량의 밀가루와 설탕이 공급되었고, 제빵 기술도 전수됐어요.
1950년대 전쟁을 거치며, 미군 부대에서 나온 밀가루로 빵을 구워 파는 개인 제과점이 늘었습니다.

 

1960년, 삼립식품이 설립되면서 한국 빵 산업은 대중화의 시대로 들어섰어요.
1964년 출시된 삼립 크림빵은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빵은 간식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죠.
이후 태극당, 고려당 같은 전통 제과점과 함께 다양한 빵집이 성장했어요.

 


 

🥐 프랜차이즈와 글로벌 시대

 

1990년대 들어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같은 대형 프랜차이즈가 등장하며 빵은 완전히 생활 속으로 들어왔어요.
이 시기부터는 서양식 빵뿐만 아니라 크루아상, 바게트, 케이크, 심지어 전통 재료를 응용한 퓨전 빵까지 등장했는데요.
오늘날 한국 빵 문화는 일본·프랑스·미국 스타일이 혼합된 독특한 형태로 발전했고, 해외 진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어요.

 


 

📌 결론 – 150년 만에 일상이 된 빵

 

우리가 당연하게 먹는 빵은 불과 150년 전만 해도 ‘낯선 외국 음식’이었습니다.
개항기 외국인 거주지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일본식 제과점, 미군정기의 밀가루 공급, 1960년대 대량생산 체계를 거쳐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한 빵 문화를 갖게 된 것이죠.

 

“한국에 언제 빵이 들어왔을까?”라는 질문의 답은 단순해요.
1876년 개항 이후, 서양과 일본을 거쳐 한국인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약 100년이 걸렸어요.
그리고 그 과정은 한국 근현대사와 맞물린, 작은 역사이자 큰 변화였습니다.

 

📚 참고자료

  • 『대한매일신보』, 1890~1930년대 기사
  • 김영진, 《한국 제과제빵사》, 한국제과기술연구회, 2008
  • 인천시립박물관 전시자료, 〈개항과 인천의 빵 문화〉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인의 음식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