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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려는 왜 몽골에게 굴복했을까?

고려는 왜 몽골에게 굴복했을까?

1270년, 고려는 몽골(원나라)과 강화 조약을 맺으며 무려 40여 년간 이어진 전쟁을 끝냈어요.
하지만 그 원인은 단순히 군사력 차이만이 아니었어요.
정치적 상황, 무신정권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몽골이라는 제국의 압도적인 힘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죠.

 


 

🌪 몽골의 부상과 고려의 위기

 

13세기 초, 몽골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북부를 휩쓸며 급속히 팽창하고 있었어요.
1225년, 몽골 사신이 서하(西夏)에서 귀국하던 중 고려와 국경 인근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됩니다.
이를 구실로 1231년, 몽골은 살례탑이 이끄는 대군을 보내 고려를 침공했죠.
이때부터 고려는 40년이 넘는 전쟁과 항전, 그리고 피폐한 나날을 겪게 됩니다.

 


 

⚔️ 무신정권의 대응 – 강화도로의 천도

 

당시 고려의 실권은 최씨 무신정권의 4대 집권자 최우가 쥐고 있었어요.
최우는 몽골군의 기동력과 파괴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면 승부보다는 지리적 이점을 활용한 장기전을 선택합니다.
그가 내린 결정이 바로 강화도로의 천도였죠.

1232년, 수도 개경을 버리고 강화도로 옮긴 이유는 간단해요.
몽골군은 기마전술에 능했지만, 해군력은 약했기 때문에 섬에 있는 수도를 직접 공격하기 어려웠거든요.
이 전략 덕분에 고려는 단기 항복을 피하고, 오랫동안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장기전의 대가 – 백성들의 피폐함

 

문제는 이 장기전이 백성들에게 너무나 가혹했다는 점이에요.
몽골군은 개경과 한양 일대뿐 아니라 전국 각지를 유린했어요.
성은 함락되고, 마을은 불타고, 수많은 백성이 학살당하거나 포로로 끌려갔죠.

농업 기반이 무너지고 기근과 전염병이 번지면서, 고려 사회 전체가 피폐해졌습니다.
특히 강화도에 있던 무신정권은 안전했지만, 육지에 남은 백성들은 끊임없이 전쟁의 피해를 감당해야 했죠.
이로 인해 민심은 무신정권과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고려는 왜 몽골에게 굴복했을까?
이해를 돕기 위한 이미지입니다.

 


 

🧩 무신정권의 한계와 내부 분열

 

몽골과의 전쟁이 길어질수록 무신정권의 약점이 드러났어요.

  1. 중앙 집권은 유지됐지만 지방 통제력 약화
    몽골군이 지방을 휩쓸면서 지방 행정은 사실상 마비됐고, 각지에서 반란과 도적이 늘어났어요.
  2. 경제적 기반 붕괴
    전쟁으로 세금 수입이 줄고, 국고는 바닥났어요. 무신정권은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웠고, 이는 불만을 키웠죠.
  3. 정치적 정당성 상실
    백성들은 “무신정권은 자기들만 안전한 강화도에 숨었다”는 비난을 했고, 일부 관료와 귀족층도 강화도 체제에 회의감을 가졌어요.

이런 상황에서 몽골과의 전쟁을 계속할 명분과 힘은 점점 약해졌습니다.

 


 

🐎 몽골의 압도적인 군사력

 

몽골이 단순히 강했다는 말로는 부족해요.
그들은 유럽, 중동까지 진출할 정도로 뛰어난 전략과 조직력을 갖춘 최강의 군사 집단이었어요.

  • 기동력: 말 한 필로 하루 수백 km를 달릴 수 있는 기마 부대
  • 공성전 능력: 금나라, 송나라와의 전쟁에서 발전한 첨단 공성 무기 사용
  • 심리전: 항복한 도시는 살려주고, 저항한 도시는 철저히 파괴하여 공포를 퍼뜨림

고려는 강화도 방어 전략으로 시간을 벌었지만, 육지 전투에서는 몽골군의 기동력과 전술에 밀렸습니다.

 


 

🤝 강화 조약 – 굴복의 선택

 

결정적인 전환점은 1259년, 몽골과의 강화를 추진하던 고려 고종이 사망하면서 찾아옵니다.
그의 뒤를 이은 원종은 몽골과의 화친에 적극적이었고, 결국 1270년 최씨 무신정권이 무너진 뒤 고려는 공식적으로 몽골의 속국이 됩니다.

강화 조약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아요.

  • 고려 국왕은 원나라의 책봉을 받는다.
  • 왕실은 원 황실과 혼인 관계를 맺는다.
  • 고려는 원에 세공(공물)을 바치고, 필요한 군사 지원을 한다.

이는 명백히 고려가 독립국 지위를 잃고, 원의 영향력 아래 들어갔다는 걸 의미했죠.

 


 

🛡 끝까지 항전한 삼별초

 

무신정권의 몰락 후에도 삼별초는 몽골과의 강화에 반대하며 끝까지 싸웠어요.
그들은 강화도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도로 옮겨가며 3년 가까이 항전했지만, 결국 1273년 진압당했습니다.
삼별초의 저항은 패배로 끝났지만, 고려 역사에서 독립 의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남았죠.

 


 

📜 고려가 굴복한 진짜 이유

 

정리해 보면, 고려가 몽골에 굴복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볼 수 있어요.

  1. 압도적인 군사력 차이 – 몽골의 기동력과 공성 능력은 당시 동아시아 최강이었어요.
  2. 장기전으로 인한 국력 고갈 – 강화도 천도로 시간은 벌었지만, 백성들의 피해와 경제 파탄이 치명적이었죠.
  3. 무신정권의 한계 – 정치적 정당성을 잃고 내부 분열이 심해졌어요.
  4. 현실적 선택 – 더 이상의 전쟁은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했기 때문에, 화친이 불가피했어요.

 

✅ 마무리

 

몽골과의 전쟁은 단순히 “약자가 강자에게 진” 사건이 아니었어요.
그 안에는 무신정권이 만든 정치 구조의 한계, 장기전의 폐해, 그리고 국제 정세 속에서의 생존 전략이 모두 얽혀 있었죠.

결국 고려의 선택은 독립성을 일부 포기하고라도 생존을 택한 것이었어요.
이 결정이 옳았는지는 시대와 관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지만, 분명한 건 당시 고려가 처한 상황에서 이는 ‘최후의 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이에요.